2015. 7. 23.

미니 자서전 - 2

제 2 장

- 중학교 ~ 고등학교 -


<열대어 상가로 들어가는 나와 민수 - 2007년 여름>

  '브릭인사이드 주니어' 운영자가 된 나는 동호회 운영은 물론 실제로 현수와 그의 동생 민수를 만나서 레고 전시회도 가보고 청계천 열대어 상가도 자주 갔었다. 이때 부터 엄청 친해지게 된다. 지금도 가끔 생각해보면 처음에 온라인으로 우연히 만난 사이가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정도까지 친해진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어쨋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1년간의 운영자 역할 경험을 통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관리한다는 것은 많은 관심과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들을 처리하는 건 번거로운 일들이었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임기가 끝나게 되고 본격적으로 학교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중학교에서 '찬영'이를 만나게 되고, 곧 현수,민수,찬영, 나는 모두 친해지게 되었다. 이 당시 현수는 초등학생이었지만 현재까지도 나이는 중요치 않았다. 이들은 내게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 오글거려) 사실 고만고만한 나이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점점 사라지는 거 같다. 어릴 때야 성장할 때니 덩치도 다르고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직접 만든 건담 - RX-78_MG, 이때 부터 군입대 전까지 무지하게 만들게 된다.>

 감성적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중학교에 들어서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강요가 있었지만, 나중에는 성적에 대한 부모님의 보상이라는 당근 때문에 스스로 하게 되었다. (여기서 당근이란 대단한건 아니고 레고나 프라모델, 열대어를 의미한다.) 덕분에 놀랍게도 전교 4등으로 졸업을 하게 되고 원하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입학을 하게 된다. 남녀공학인 중학교때 여자애들과 더 친해놓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때는 내가 아직 덜 성숙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자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었다. (안타깝게도 향후 남고로 가면서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기는 '시간차 어택'을 당하게 된다.)


<지금은 팔아버린 4자 대형어 수조>

  중학교부터 군제대를 할 때까지 열대어에도 푹 빠져서 소형어인 구피로 시작해 나중에는 기본 15cm 이상인 '대형어'를 키우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에 맞게 어항도 40cm짜리에서 1m 20cm로 커지게 된다. (처음으로 고등학교 때 받은 성적장학금을 여기에 모두 쏟아부었다. )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현수, 민수와 청계천 열대어 상가도 자주 갔었고 비싼 고급어종을 제외하고 대한민국에 납품되는 대부분의 열대어를 키워봤던거 같다. 나중에는 열대어 책도 사서 보고 여과 시스템에 대해서도 공부할 정도였다. 해수어를 제외한 열대어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런 경험 때문에 향후 군대에서 대형 열대어 수조관리를 떠맡게 된다.. )










<내 고등학교 건물은 상당히 미로 같은 구조였다..>

  자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 내가 입학한 고등학교는 남고였고 전교생이 1800명에 육박하는 곳이었다. 처음으로 막 입학했을 때 뭣도 모르고 걍 학구열만 엄청나게 높아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담임샘을 졸라서 2학년들이 쓰는 면학실에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약 일주일간은 다른 1학년들이 '교실'에서 야자를 할 때, 우리는 2학년 전용 '면학실'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게 된다. 그러나 2학년의 상위성적들만 들어간다는 면학실이 오히려 보통 교실보다 더 시끄럽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들은 웃으며 다시 우리 교실로 돌아가게 된다.

  1학년이 끝나갈 즈음, 이과와 문과를 선택해야 했다. 당시에 적성검사결과로는 완벽한 이과생이 나왔다. 추천 직업으로는 연구원, 개발자 등등.. 놀랍게도 대학교 3학년에 들어서 다시 검사를 해보아도 같은 결과이다.. (어찌보면 타고난것이지만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어릴 때 생각하던 예술쪽의 길과는 멀어지게 되어 슬프다.) 게다가 문과적인 과목보다 이과적인 과목이 훨씬 나에게 맞고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이과를 선택하고 본격적으로 이과적 사고 교육을 받게 된다. 고등학교 2, 3학년 당시 가만히 이과 친구들을 관찰해보면 좋게 말하면 객관적이고 논리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너무 이해타산적이고 사소한 것도 피곤하게 따지려고 한다. 물론 우리가 나중에 업무상에서는 이런 이과적 특성을 가지고 일해야 하겠지만 너무 인간미가 없어 보였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중에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더라도 다른 '사람'과 일을 하게 되지 로봇같은 무생물과 함께 일하지는 않는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가끔은 문과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문이과를 너무 극단적으로 표현했지만 물론 이과여도 인간미가 있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틈만나면 친구들과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장난꾸러기였다.

  고등학교때는 앞으로 인생에 대한 계획을 생각해봤다. 미래에 대한 모습들. 내가 이루고 싶은 몇가지가 있었는데 근미래에 하고 싶은 것들 중 하나는 결혼을 해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고등학생인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공부만 했었던거 같다. 물론 이과적인 내용이 흥미가 있던 것도 한 몫을 했다. 지금 되돌아 보면 고등학교 시절은 장난과 공부가 전부였던거 같아서 아쉬운 점도 있다.


<학과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친 영화 '아이언맨'>

  대망의 고3이 되고, 수시로 넣은 대학들이 우르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는 수시 접수 횟수 제한이 없었다.) 우리학교는 수시에 강한 학교이기 때문에 수시에 올인을 한 상태였었다. 덕분에 슬럼프도 찾아왔지만 현수에게서 온 편지 한통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이후에 나도 같은 시기를 겪는 현수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경희대와 서울시립대에 합격을 하게 되고 더 원하는 학과를 선택해 서울시립대 기계정보공학과로 입학을 결정하게 된다. 원래부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중장비 엔진소리와 기어의 움직임 같은 것들이 너무 좋았는데 고등학교 때 본 영화 '아이언맨'이 학과 선택을 더 확고하게 만들어 줬다. ( 실제로 같은 과의 동기들 중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동대문에 있는 인도음식점 - 2009년 겨울>

  대학에 합격하고 겨울방학에 다시 현수, 민수, 찬영을 다같이 만났다. 동대문에 있는 인도음식점도 가고, 다시 청계천도 찾아갔다.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즐거웠다.


이제 본격적인 공대생의 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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